기원전 3세기 이후, 부파불교(部派佛敎)로 대표되는 불교교단은 전 인도(印度)에 발전했다. 상공업, 교역에 의하여 거부를 얻은 상공업자나 제왕가등의 신도층에 의한 지원으로 경제적 기반은 안정되고, 정사(精舍)나 탑원(塔院), 혹은 이들을 합한 가람(伽藍)이 인도각지에 세워졌던 것이다. 불교교단은 화려한 번영의 길로 나아가지만, 한편으로는 청신한 종교활동의 저조화의 경향은 피할 수가 없었다. 진지하게 수행하고, 학문연구에 노력하는 比丘들이 있는 반면, 무자각한 비구(比丘)들도 적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불교승가는 재속신자를 위하여 공덕을 쌓게 하는 매체로서의 기능만이 발휘되고, 생생한 종교적 자각은 저하되어 갔으며, 비구들에게 있어서 조차 깨달음은 요원한 것이었고, 재속신자에 대한 포교도 그 활력을 잃은 면이 생겨났음은 부인할 수가 없다.
안정된 생활의 혜택을 누리며 승원(僧院) 깊숙한 곳에서는 "아비달마"교학이 더욱더 정치(精緻)함을 더해 갔으며, 차츰 학문연구가 진전됨에 따라 실천은 형식화되고, 참된 종교성이 교단면에선 희박해 진 면도 명백해졌다.
불교교단은 침체의 기풍을 빚어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하에 불교도가운데서는 각가지 반성내지 반발이 생겨났다. 이에 더하여 서북인도에서는 기원전 2세기이후부터 각가지의 서아시아의 종교사상이 도입되어 불교도간에도 신선한 자극과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이때에 출현한 것이 "대승불교운동"인 것이다. 대략 기원전 1세기 중엽부터 그 밑바탕은 이미 길러져 왔다고 보아 대과는 없을 것이다. 가장 강조된 점은 불교가 의거하고 있는 진실(法)의 종교적 자각과 실천이었다고 해도 좋다. 학문적으로 분석하는 법의 해석이 아니라, 스스로 수용하고 실천해야 할 진실에의 각성이었다. 불교는 본래 종교실천을 중시하는 것이나, 이 시대의 부파불교는 이것이 희박하게 된 흔적이 있다. 이러한 뜻에서는 "대승불교운동"이란 곧 석가세존의 불교로에 원점회귀라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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