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과장없이 말하자면, 당시로선 퍽이나 낯설었을 ‘비표상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논의되던 한 준공식적인 자리 서 나는 그 상황을 기이하다 생각하며 즐기고 있었다. 그들은 표상의 ‘있음’과 ‘없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듯 했다. 예컨대 어떤 이는 “표상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하고 당황스러움을 역력히 드러내 묻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표상이란 것이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며 더러 불편한 자신의 심기를 내비치며 반문하기도 했던 것이다. 통상, ‘있음’과 ‘없음’이란 우리가 나누어 지니고 있는 folk theory(다루는 대상에 따라 민간심리학, 민간물리학, 민간생물학 등으로 나누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에 비추어 판정된다. “너 가진 동전 좀 있니?”하고 친구가 물어올 때,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동전의 존재론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물음에 답하기 위해 동전의 소유 여부에 대한 추론에만 의존하는게 아니라, 그와 동시에 손을 넣어 호주머니를 뒤져보며, 자신이 동전을 가지고 있는 지에 대한 추론이 채 끝나지 않더라도, 동전이 손에 쥐이면 꺼내어 건넨다(물론 호의적일 경우에만 그럴테지만). 하물며, 동전의 ‘있음’과 ‘없음’을 갈라주는 기준 따위를 고려할리 만무하다. 동전이 ‘있다’고 하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질문은, 그게 ‘화폐’의 실재성에 대한 사회과학철학적인 반성의 맥락이 아닌 한, 실없는 것이 되기 쉽다. 난 막무가내로 그런 질문마저 진지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의 지적인 성실함(?)으로 무장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 더듬게 될 ‘표상’에 대한 연구자들의 태도가 동전의 존재여부에 대한 일상적인 이해와 비슷할 정도라면, 그러니까 그것의 존재 여부를 갈라주는 기준이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이 어색할 정도로 공고한 것이라면, 그 견고함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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