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식이야기

“윤회의 자아와 무아”(요지)

현관 2009. 5. 1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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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과 윤회의 당사자는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나 자신이며,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나의 육신을 형성하고 지배하는 정신이다. 이 정신을 추상화하면 그것은 세계 운행의 이치가 되는 보편적 원리로서 표현되며, 그 정신을 구체화하면 그것은 나의 활동을 지배하는 개체적 원리로서 표현된다. 아트만 즉 자아 또는 영혼이라는 개념은 그 정신을 구체화하는 후자에 속하며, 이에 대한 해명은 有我論을 형성한다. 불교의 無我說은 전자의 입장에서 후자를 해명한다. 그리고 윤회설은 그 양자를 포괄한다.

정신의 구체화는 곧 윤회를 성립시키는 주체를 제시하는 과정이다. 인도 철학 일반에서 제시하는 다양한 이름의 주체 개념들은 구체적 원리일망정 궁극의 실재는 아니다. 그것은 궁극적 실재의 可視化이며, 그 실재와 연결되는 매체일 뿐이다. 그 실재는 추상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에 그러한 가시화 또는 매체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매체의 존재는 무아를 주장하는 불교측에서도 부정되지 않는다. 불교에서 영혼의 존재를 인정한 듯한 표현이나 개념, 예를 들어 非我, 푸드갈라(人我), 中陰身, 알라야식, 여래장 등도 그러한 입장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 보편성과 진리성을 확대하면 할수록 더욱 추상화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궁극적 실재는 탐구자들에게 서로 다르게 표현되거나 命名될 수 있다. 혹은 그 표현이나 명칭이 아예 거부될 수도 있다. 한정하면 할수록 파기될 수밖에 없는 理想 또는 진리가 존재함은 어느 탐구자에게든 결코 부정되지 않는다. 인도 철학의 과제로서, 有我를 전제하는 윤회설과 그러한 전제를 거부하는 무아설의 상충을 해소하는 길도 위와 같은 관점에서 찾을 수 있다. 아울러 여기서 양자의 同異를 반목 없이 인정할 수 있다. 여기서는 아트만의 존재 또는 인정 여부가 윤회설의 성립 여부를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기준이 되지 않는다.따라서 불교에서는 영혼과 같은 윤회의 주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