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자료

비트겐슈타인과 용수

현관 2009. 5. 13.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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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우리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龍樹(Nāgārjuna)의 철학적 관점에서 규명하, 또한 용수의 철학을 비트겐슈타인의 관점에서 읽어 냄으로써 비트겐슈타인과 용수의 철학에 대한 기존의 해석을 교정하려 한. 동양과 서양, 그리고 시대의 차이로 상호간에 멀게만 느껴졌던 비트겐슈타인과 용수의 철학을, 평면적 단순 비교가 아니라 서로에게 유익하고 생산적인 대화로 이끌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

동양과 서양의 철학적 만남이 생산적인 대화로 성공적으로 이끌어지려면 만남에 참여하는 어느 한쪽이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상대방이 수용할 것이라고 전제하거나 강요해서는 안 될 것이. 예컨대, 보편적 합리성이나 과학적 객관성과 같은 이념이 쌍방 간의 대화를 가능케 하는 유일한 척도를 제공해 준다는 전제하에 만남의 틀이 짜여질 때, 그 대화는 애초부터 불평등한 관계에서 시작될 것이며 결국은 비생산적인 형태로 끝나고 말 것이. 하이데거와 데리다가 폭로하고 있듯이 전제되는 두 이념은 서양의 이성 중심적 형이상학과 그 뿌리를 같이 하는, 서양 중심적 척도이기 때문이.

서양에서 용수의 중관철학에 대한 수용과 해석의 역사는 동서의 진정한 만남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노정하고 있. 용수의 중관철학에 대한 서양인들의 첫인상은 허무주의, 바로 그것이었다(Keith, 1923, pp. 237, 239, 247, 267 ; Kern, 1896, p. 126). 중관철학의 핵심 개념인 로 간주한 데서 비롯된 이러한 입장은, 윤리적 가치를 포함한 일체를 오로지 부정한다는 의미로만 공을 해석하거나, 혹은 공이나 무가 있다는 식으로 공을 사물화하여 해석하고 있.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중관철학자들 스스로에 의해 명백히 부정되고 있. 예컨대, 짠드라끼르띠(Candrakīrti)는 용수의 󰡔중론󰡕을 주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