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 무아설의 교의 연구
宇宙와 生命現象의 根源을 探索해 온 人間思惟의 軌跡은 매우 다양하며, 그에 대한 形而上學的,宗敎的 解答 또한 매우 多端하다. 그러나 그 물음과 해답의 양식은 매우 간결하다. 人間과 더불어 生命現象의 本質은 무엇인가. 이것은 곳 어디서 왔으며(何處來), 어디로 가는가{何處去)이다. 人類 普遍의 이러한 물음에 대하여 인간에게 주워진, 아니 인간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해답들은 언제나 온 곳(來處)과 같 곳(去處)을 여지없이 준비하였다. 다시 말하면 이 현상계를 지배하는 絶對的인 攝理가 있을 것이라는 人間의 보편적 畏敬意識, 또는 이미 기대된 형이상학적, 종교적 열망을 대변하여 神을 섬기게 했고, 신은 다시 절대적 섭리 또는 宇宙的 本體(에: 브라흐만)로 高等化 되어 갔으며, 물질이 그 根源일 뿐이라는 생각에 우리의 生命現象은 요소로 돌아가 소멸할 뿐이라는 斷滅의 철학을 갖게도 하였으며, 나아가 덧없는 物質이 無形의 精神을 빌어 生存하는 것이라 여겨 영혼의 獨尊을 갈망하고 신앙하기도 한다. 이러한 각각의 사상들은 현상계의 오고감(去來)에 대한 인간의 관습적 물음에 대하여 한결같이 오고감(去來)의 攝理를 나름대로 해명함으로서,인간경험에 의한 보편적 삶의 해석을 확보하려 하였으며, 天上의 태어남과 해탈등 靈的體驗의 역사를 共有하며 교단을 형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生滅去來, 生住異滅하는 엄연한 現象界, 그리고 그 현실을 살고 있는 個別적 主體나 어떤 主帝적 實體의 설정마저도 否定함으로서 윤회와 재생의 교상을 논의케 하고,나아가 생명현상을 지배하는 어떠한 형이상학적 대답도 거부한 불교의 無我說은 絶對者에 대한 탐색과 絶對境에 대한 성스런 欲求 마져도 해탈의 장애가 된다고 보았다. 過去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 것, 未來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 것, 有情은 何處에서 왔으며 何處로 가는가를 묻는것 그 자체와 凡夫로서의 沙門, 波羅門의 行, 會式, 祝쓿를 最勝이라고 생각하는 것 마저도 否定하였으며, 또 ...“.善宿이여 훅은 起源에 대해 宣示하기도 하며,하지 않기도 하나니, (그것에 대해)묻지 마시오 내가 설한 법에 있어서는 그것을 닦아 행하는 자는 완전한 苦滅의 目的으로 引導되나니.,. " 라고 설하기도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