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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불교

佛性과 靈性

201408_01_MS.pdf

 

이번 학회의 테마인 불성은 영성인가?’와 관련하여 우선 한 가지 개인적 추억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지금부터 20년도 더 전의

일인데, 어떤 불교 잡지의 편집회의에 초대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잡지의 독자를 늘릴 수 있을지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 그 잡지의 편집 책임자는, 잡지에서 ()의 이야기를 하면 잡지의 독자가 늘어날 거라고 알고는 있

지만, 독자를 늘리기 위해서라 하더라도 영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습니다. 저는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

에 영의 이야기를 하기만 한다면 독자가 늘어난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일본에서는 특히 1980년대 무렵부터 뉴 에이지(New Age), 정신세계, 힐링 같은 것들이 유행하여, 스피리추얼 비즈니스라고 불리는 것마저 존재했지만,1) 그와 같은 유행의 중심에는 아무래도 영과 영혼이라는 관념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영과 영혼이라는 말조차 없었다면 여러 가지 영감(靈感) 상술에 의한 피해나 옴진리교 사건도 없었을 것입니다. ‘들러붙은 악령을 쫓아내다라든가, ‘영을 카르마로부터 정화하다라는 식의 사고방식은 라는 말이 없이는 성립하지 않을 터입니다. 그러나 불타(佛陀)는 무아(無我)를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무아에 의해서 부정되는 아트만이라는 것은 영혼이 아니겠습니까? 리고 아트만이 영혼을 의미한다면 불타는 영혼을 부정했던 것이 아닐까요? 물론 불타는 무아를 설했다’, ‘불타는 아트만을 부정했

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학문적으로는 진중한 절차가 필요합니. 예를 들어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 박사는 초기불교에서는 아트만을 적극적으로 긍정했다라는 취지의 견해를 주장했지만, 저는 이 나카무라설을 비판하여 불교의 연기설은 아트만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2) 그러나 여기서는 이 문제를 논하는 것은 삼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