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존재를 옹호하면서 동시에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얼핏보기에 모순인 것 같다. 그러나 서양 근세 철학사에서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신의 존재를 옹호함에도 불구하고, 상호간에 무신론자라고 논박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예컨대 데카르트는 모든 학문과 도덕성의 기초를 신의 존재에 의존하지만,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는 라이프니츠는 데카르트의 실체론에 비추어 데카르트가 무신론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것을 논자는 신의 얼굴에 대한 화장술의 차이를 두고 어느 화장술이 신의 모습을 제대로 그려낼 수 있는지 대한 논쟁으로 본다. 물론 이 논쟁에서 각 철학자들은 자신이 그려낸 신의 얼굴만을 신의 참된 모습이고 그밖의 신의 얼굴을 모두 허상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신의 참된 얼굴을 우리는 볼 수 있을까? 만일 신의 참된 얼굴을 우리가 알 수 있다면, 신의 참된 얼굴이라는 기준은 무엇일까? 서양의 ‘종교’(religion)라는 개념에는 이런 논쟁이 공허한 말싸움에 그칠 요인은 없는가?
아마 종교적 논쟁이 말싸움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서양 근대사의 종교적 논쟁 이면에는 권력의 충돌과 이해 관계의 대립이 개입되어 있다. 이 종교적 갈등은 역사적으로 엄청난 수의 무고한 희생자를 양산하고, 문화적 폐해 또한 적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토인비(A. J. Toynbee)의 <역사의 연구>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듯이, 콜롬부스가 아메리카에 도달하면서 시작된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유럽 기독교도들의 선교 활동은 원주민 도륙이었고, 종교적 표현을 빌자면 사탄들의 잔치였다. 이 비극의 역사에 대해 아직도 교황청은 교황의 無謬權이나 들먹이고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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