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의 원형사유는, 모든 현상을 ‘조건에 따른 성립/발생’(緣起, paṭicca-samuppāda,paṭicca/緣하여 sam/함께 uppāda/일어남)으로 보아 ‘성립/발생의 조건들’과 ‘조건들의 인과적 연관’을 포착하려는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붓다의 연기법을 파악하기 위한 관문은 ‘조건에 따른 성립/발생’이라는 말의 의미와 초점이다. 이 말의 의미와 초점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연기해석학의 계보들, 즉 ‘불교의 연기설’들이 갈라진다. 붓다는 이 ‘조건에 따른 성립/발생’이라는 원형사유를 가히 전방위적(全方位的)으로 일관되게 적용한다. 붓다 삶의 모든 범주와 내용이 이 원형사유에 의해 직조(織造)되고 있다. ‘붓다의 연기법’과 ‘불교의 연기설들’ 사이에는 초점의 다양한 자리이동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불교의 연기설들’, 그 연기 해석학들은, 비록 ‘조건에 따른 성립/발생’이라는 연기 원형사유의 중요한 ‘부분 의미들’을 포착하여 나름대로 정교하게 이론화시키는 기여를 하지만, 동시에 간과할 수 없는 ‘초점 이동’을 수반하고 있다. 삶과 세계의 문제들을 연기법으로 이해하고 풀어가고자 할 때, 연기법의 원형사유에 초점을 두어 ‘연기의 법칙언어’에 의거하는 것과, ‘불교 연기설들’의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것은, 통하면서도 어긋난다. 불교의 연기설들은 붓다의 연기법이 지닌 의미와 생명력을 발굴하는 동시에 제한시켜 온 측면이 있다. 연기법에 의한 삶과 세상의 치유, 개인과 세계의 연기법적 합리화를 향해 전방위적(全方位的)으로 작동해야 할 붓다의 연기 깨달음은, ‘불교 연기설들’의 특정한 해석학적 프레임 안에 갇혀 연기법 본연의 삶/세계 치유력이 제한 내지 왜곡되지 않았는가를 물어볼 필요가있다. 남방과 북방의 연기해석학들이 제공해 온 연기적 개안이, 일상의 실존문제들을 ‘조건 인과적’으로 파악하여 개인과 사회를 ‘조건인과적 합리성’으로 치유하는 힘으로 이어졌다
고 보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불교전통에서 ‘수행’이나 ‘깨달음’의 문제가 흔히 일상이나 사회의 문제와 괴리되어 버린 것은, 근원적으로 ‘붓다의 연기법’과 ‘불교의 연기설들’ 사이에서 발생한 초점의 이동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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