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인도의 모든 종교에서,또 현재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모든 종교에서 사상적으로 불교 고유의 특성을 대변하는 것이 無我說이라는 데 대해서는 이
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무아설은 불교의 두드러진 표식,아니 불교의 다른 이름이 된다.”고 말하는 것이 합당하다.
이렇게 중요한 사상인 만큼 무아설에 대해서는 고래로 숱한 논의가 있었다. 근대 이후의 학자들 사이에서도 無我의 문제는 가장 많은 논저의 주제로
취급되어 왔다.2> 그리고 앞으로도 불교가 존속하는 한,무아에 대한 논의와 부파불교시대 이후의 주석가들로부터 현대 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무아설이 그토록 많은 논의의 쟁점이 되어 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무아설이 불교의 핵심적 교리라는 데 있다기보다는 그것이 일상적 思考로는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長部 경전에서 붓다 자신도 “이 교의는 심원하여 보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
우며,고요하고 탁월하고 추론의 영역을 초월하고 미묘하며,현자만이 이해할수 있다.”3)고 말한 바 있다. 일반적으로 불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無我의 진리
는 모든 진리 중에서 가장 깨닫기 어렵다고 인정되며,그래서 스리랑카의 대주석가 BVddIagIosa는 무아의 특징을 묘사하는 일은 오직 붓다의 직분이라
고 말했다고 한다.4>
석가모니의 성도 이후 소위 ‘梵天勸請’의 전설이 시사하듯이 그것은 난해한 覺者의 경지이긴 하지만,중생을 苦로부터의 해방 즉 해탈시키기 위해서
는 일상적 언어로써 제시될 수 밖에 없었고 이 언어를 통해 우리를 포함한 붓다 이후의 모든 사람들은 무아의 가르침을 이해해 왔다. 일상적 언어에 함
축된 覺者의 경지나 의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佛典의 언어를 직접 구사했던 인도 자체의 불교인들에게도 논의의 대상이었을 터인데,
이차 훅은 삼차의 번역 과정을 거쳐 그 언어를 간접적으로 전달 받는 입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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