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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이야기

감정은 자연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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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개념이 자연종이 아니라는 주장은 낯선 것이 아니다. 이는 왜 아직까지 다양한 감정 이론들이 난립하고 있는지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이 글에서 나는 감정의 자연종 지위를 둘러싼 논의가 공통적으로 전제하고 있던 전통적 자연종 개념의 한계를 지적함으로써, 새로운 논의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이를 위해 필요충분조건에 의해 규정되는 전통적 자연 종의 확장 개념으로서 '항상성을 지닌 속성다발종’을 제안하고, 이를 감정 논의에 적용하여 감정의 자연종 지위를 검토한다. 새로운 자연종 개념에 비추어 감정은 자연종이 아니라는 그리피스의 견해를 옹호하고 비판자들의 반론에 대응한다. 그러나 감정 제거주의를 주장하는 그리피스의 견해를 비판하고, 감정이 자연종이 아니라고 해서 그 개념을 제거해야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감정에 대한 연구는 왜 그리 어려운가? 역사 이래로 수많은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감정의 본성을 포착해내기 위해 애써왔지만, 왜 아직도 대체로 합의된 견해가 존재하지 않는가? 역사상 감정의 본성을 밝히려는 수많은 이론들과 다양한 전통들이 있어왔다. 데까르트, 홈, 제임스의 계보는 잇는 느낌 이론이 있는가 하면, 스키너와 같이 감정을 일종의 행동 성향으로 파악하는 행동주의 전통도 있다. 스토아 학파를 이어받은 솔로몬과 누스바움 같은 대표적인 인지주의자도 있는 반면, 다윈을 따라 감정이란 생존을 위해 환경에 적응하는 한 방식이라고 이해하는 진화론 전통도 있다. 감정이 공동체 내에서 특정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이라고 보는 사회구성주의적 전통도 존재한다.
현대의 주요 이론들만 꼽는다 해도 인지주의, 진화심리학, 신경생리학, 사회구성주의 등을 들 수 있다. 왜 이렇게도 다양한 전통들이 존재하면서 여전히 각축하고 있는가? 각 전통들은 감정의 어떤 특징 들을 잘 설명해냄으로써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한다. 그런데 그들은 저마다 자신이 잘 설명할 수 있는 감정의 한두 가지 측면만을 부각시켜 모든 감정이 그러한 특징을 가진다고 혹은 가져야 한다고 주장 한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예컨대, 제임스一랭 이론은 우리가 감정을 느낄 때 대개 동반하는 신체적, 생리적 변화에 주목하고 그것을 설명함으로써 감정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부각시켰다. 근래에 들어 많은 신경과학자들이 감정의 신경적 기초를 밝히는 연구에 뛰어 들었는데, 그들은 신체의 생리적, 신경학적 변화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제임스一랭 이론의 후계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제임스一랭 이론에 따르면, 감정은 신체의 생리적 변화에 대한 자각으로 정의되고, 고도로 인지적이고 사회적이라고 여겨지는 감정들조차도 동일한 감정의 정의를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