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학설에 많은 영향을 받은 윌리엄 제임스는 심리학자들이 마음의 ‘기능들’에 주목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기능주의’로 명명된 그의 심리학적 방법론은 마음이 함유하는 요소적 특성 보다는 마음이 수행하는 기능에 초점을 맞추었다. 기능주의에 따르면 마음은 진화의 산물이며, 그것은 개체의 생명을 보존시키고, 후세에 더욱 많은 유전자를 전달하는 데에 효율적이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모습을 띄게 된 것이다. 달리 말해 마음은 환경에 대한 유기체의 적응을 돕는다.
대부분의 심리학 개론서의 서장에 실험심리학의 아버지로 소개되는 윌리엄 제임스가 가지고 있던 심리학에 대한 태도는 위와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제임스 이전에 융성했던 분트와 티취너 등의 구조주의는 심리학 연구의 방법론으로 의식적 경험의 요소적 분할을 시도했다. 이러한 경향은 뉴턴 물리학의 등장과 미분법의 발견 이후 지속된 자연과학의 환원주의적 전통을 연장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마치 자동차 엔진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점화 장치와 파이프, 연료통을 각각 따로따로 떼어 분석하는 것만큼 심리 현상과 의식 구조에 접근하기에는 요원한 방법론이 될 것이다. 이와는 달리, 제임스가 제안한 기능주의적 방법론은 그 이전까지의 심리학이 간과하고 있었던 풍부한 학문적 가능성의 물꼬를 터주게 된다. 그 중추적인 기반이 되는 기능주의 심리학의 핵심적인 발상 중 하나는 그것이 인간 정신을 생물 진화라는 연속적인 역사의 도상에서 이해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비로소 심리학은 발생 생물학, 계통 생물학, 비교 생물학, 컴퓨터 과학 등의 학문 줄기와 소통할 수 있게 된다.
19세기 후반에 윌리엄 제임스에 의해 발표된 ‘기능주의’라는 용어는 1967년 힐러리 퍼트남에 의해 심리철학의 논단에서 ‘심적 기능주의’라는 학설의 이름으로 다시 한 번 사용된다. 하지만 제임스의 아이디어가 직접적으로 진화론과 연계되어 설명되는 것과는 달리, 마음의 본성에 관한 철학적 논의에서 직접적으로 ‘생물종의 진화’라는 현대 생물학의 법칙적 지위를 갖는 가설이 진지하게 고려된 적은 없는 것 같다.
사실상 현대 과학을 지탱하고 있는 두 가지 기둥이 진화론과 양자 물리학이라는 현실은, 오늘날의 인류 문명이 세계에 대한 정합적인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주제에 대한 진화론적 반성이 필연적으로 요청됨을 시사한다. 앞으로 전개될 논의에서 우리는 현대 진화 생물학이 설명하는 마음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이중에서도 특별히 우리가 다루어보고자 하는 문제는 진화론의 아이디어를 통해 기능주의라는 방법론을 획득한 현대 심리학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진화 생물학 이론으로부터 심리철학계의 지배적인 이론으로 인정받고 있는 심적 기능주의가 무리 없이 도출되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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